고독은 열정의 간호원이다. 그리고 열정은 천재의 부모다. 어느 시대건 고독은 부르면 즉시 달려갔다.
헨리 도로우
나는 고독보다 더 절실한 친구를 발견한 것이 없다.
조지 버나드 쇼
홀로 설 수 있는 힘은 어떤 슬픈 고독의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 다.
찰스 램
그대여! 당신은 군중 속에서 뼈아픈 고독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조셉 포트 뉴톤
사람들이 고독한 것은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토마스 울프
그리스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 이 고독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생활 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고독한 인간
1979년 뉴욕에서는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의 카메라 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고독이라는 제호의 사진전이었는데 작가는 부제를 붙여 "한 인간의 고독"이라고 했다. 사진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뉴욕의 뒷골목인 흑인들만이 살고있는 거리였다. 불이 꺼진 석유난로가 있고 새벽년에 뿌옇게 창가를 찾아오는 냉기만이 있는 한 칸 방에 한 노인이 흰벽을 향하여 담요를 뒤집어 쓰고 앙상하게 누워있는데 머리 맡에는 전화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 전화가 바로 사진의 초점이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밀폐된 방안에 외부 세계와의 단 하나의 연결인 가느다란 이 전화선이 놓여 있을 뿐이다.
어김없이 하루에 한 번씩 전화벧이 울렸다. "밤새 별 일이 없으셨습니까?"
이 전화는 자녀들이나 친구들이 아닌 "장의사"의 문의 전화이다. 전화의 응답이 없으면 이 노인이 간밤에 별새한 줄로 알고 앰브란스가 늦지 않게 찾아오도록 조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려는 전화선 하나 외에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이 노인방에서 죽음 앞에 서 있는 이 노인 방에서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의 고독을 상징으로 한 사진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원인은 죄 때문이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인간은 그 고독의 숙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 변신(고독한 인간)
독일의 유명한 작가 카프카(Frahz Kafka)의 작품 중에 [변신]이라는 것이있다. 주인공 글레골은 외판원으로 생업을 이어가며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젊은 가장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의 몸 전체가 다리가 무수히 달린 한마리 벌레로 변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직장에도 물론 못나간다.
그의 흉칙한 모습을 발견한 집안 사람들이 순식간 살벌해 진다. 어머니는 졸도를 하고, 아버지는 그를 방에 가두고는 방문을 잠궈 버리고 말았다. 이제껏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해왔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온 식구의 경멸과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게 되고, 그레골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허무감과 함께 고독이 휩싸이게 된다. 그의 생활이란 감금된채 갖다 주는 시가사를 받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날이 갈수록 자신을 저주하며 고독과 열등감의 수렁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날아침 가족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는 그를 발견했고 그들은 애도의 눈물은 커녕 오히려 오랜만에 맞는 해방감을 만끽하듯 식구들이 함께 산책을 즐긴다. 이 작품에서 카프카는 인간의 궁극적인 고독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는것이다. 인간의 영원한 고독을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시다.
예화 모음
주제 : 고민
▣ 세 번째 고민
실존 철학자 하이덱거는 "사람에게는 세가지 고민이 있다. 첫째는 물질에 대한 것, 둘째는 사람에 대한 것, 셋째는 자신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 즉 돈을 벌려고 한다. 그것이 성공하면 다음으로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려고 한다. 만약 그것도 성공하면 마지막으로 자신에 고민을 느끼게 된다.
첫째 고민을 푸는 자는 간혹 있다.
둘째 고민을 푸는 자는 더욱 간혹 있다.
그러나 셋째 고민은 아무도 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셋째 고민은 믿음에서 얻어지는 영원한 소망만이 풀어줄 것이다.
주제 : 고백
▣ 사랑의 희생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였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교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갔었다. 그는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1년 반을 감옥에 감금당했다. 노인이 되어 성벽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어 갈 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오직 예수"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의 목사 안수식 때에 "오, 주 하나님 당신께 나 자신, 나의 아내, 나의 자녀, 그리고 나의 모든 소유를 드립니다"라고 말했으며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만을 향한 독점적인 사랑을 취소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린드 물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화형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라고 재판관이 물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이고, 내가 그 모든 것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겨우 빵과 물만 먹고 살게 될지라도 내 가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교살되어 화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희생을 잊지 않으셨다.
기쁘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J. 오스왈드 샌더스
예화 모음
▣ 고백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와 문필에 능통했던 토마스 카알라일은 아주 신경질이 많아서 자기 부인을 학대하여 부인이 거의 자살하려고까지 했다. 그의 부인은 한 번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부인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고 좋은 남편이 아닌 것 같았고 살아도 희망이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인은 죽었다. 누가 보아도 부인은 억울하고 토마스 카알라일은 자기 부인에게 좋지 않은 남편이었다. 그러나 토마스 카알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내 속을 모른다. 단 5분만이라도 좋다.
아니 2분만이라도 좋다. 내 아내가 한 번만 다시 살아난다면 꼭 한마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죽었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누가 이 사정을 알아주랴? 누가 이 마음을 알아주랴? 사실은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다'
이 사람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항상 주님과 가족과 친구와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고백해야 한다.
❏ 과학자의 고백
영국 한림원(The Royal Society)에는 과학자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잭 뉴턴이라든지 열역학의 복사법칙을 발견한 제임스 진수는 모두 영국이 배출한 석학들이다. 진스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하나의 과학자에 불과하다 학문을 연구하면 할수록 창조주 하 나님의 위대함에 감복할 뿐이다. 제한된 지식을 알게된 피조물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알 수 있겠는가]
주제 : 고향
▣ 본향을 향한 인간의 영원한 향수
「노스텔지어-nostalgia」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라고 하는 러시아 영화 감독이 이탈리아로 망명한 뒤에 제작한 영화로, 본향을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향수(nostalgia)에 대한 뛰어난 영상미학과 깊이 있는 내용을 인간 심연에 전달해 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고르챠코프의 가족과 고향에 대한 향수와 또 한 사람의 등장인물 도메니크라는 이상주의적 박애주의자의 기행이 전부이다.
도메니크는 이세상의 두 곳에 불을 밝히면 타락한 세상이 구원될 것이라는 믿음을 이야기 하며 그 두 장소중의 한곳은 로마인데, 이 장소는 도메니크에게 소명된 곳이다. 다른 한곳은 고르챠코프가 머물고 있는 작은 온천장인데, 이 온천장에서 촛불을 켜고 한쪽 끝에서 반대편의 끝까지 다다르면 구원을 이룰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었고, 그 담당은 고르차코프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도메니크가 약간 정신이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던 고르차코프는 그의 말을 하찮게 여겼지만 점점 도메니크와 공감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향수를 통해서 코르챠코프는 인간의 단순한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부터 타인의 향수, 그리고 마침내는 본향을 향하며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 본연의 깊은 향수를 이해하게 되고 도메니크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아울러 타르코프스키는 이 결말을 통해 그 정도가 어떻든지 간에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향수라는 병은 믿음과 희생 그리고 성실을 통해서만 극복되어질 수 있다는 하나의 소망을 건네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본향을 향하는 영원한 향수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미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비록 에덴 동산을 떠났고, 세상에서 배회하고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본향이 바로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문밖에서 우리는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의 닫혀진 마음의 문들이 열리고 본향을 향한 소망들로 가득차기를 원하신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믿음과 희생, 그리고 성실을 통해서 얻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출처: 복음과 상황 96년 2월호 p117-121
▣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국의 문학가로 잘 알려진 '토마스 월트'의 소설 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젊어서 꿈꾸던 모든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돈도 벌었고 명예도 얻었고 지식도 얻었고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똑똑한 자녀도 골고루 두었습니다. 모든 소원하는 것들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오랫동안 그리던 고향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옛날에 자기가 살던 고향 땅에 갔습니다. 노오스 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애쉬빌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역전에 내리는 순간 그는 몹시 당황하고 실망했습니다. 고향은 너무나 변해 있었읍니다. 거리는 현대화되고 인심도 변해 있었습니다. 친구는 남이 되고, 고향 땅에 온 자기는 오히려 이방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은 이미 자기가 꿈에 그리던 마음의 고향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