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날 왕자를 무척 따르던 로스페테라라는 예쁜 처녀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평민은 왕자를 사랑하지 못하므로 그녀는 몰래 가슴만 태우면서 왕자를 기다리며 지냈다. 한 번은 이웃나라와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가장 믿던 장군의 배반으로 왕자는 홀로 도망쳐 왕의 사냥터에 숨었다.
이때 로스페테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이 산에 가서 왕자에게 바치고 싶었던 금반지며 금팔지를 묻은 싸리나무 밑에서 신께 기도를 드리려다가 의복이 찢긴채로 한 청년이 지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정심이 많은 로스페데는 그 청년을 조용히 깨워 포도주와 빵을 먹이고 상처를 씻어
주었는데, 그때 왕자의 무늬가 박힌 보석반지를 낀 손을 보았다. 로스페데는 그제야 그가 행방불명의 왕자인줄을 알았으나 모르는 체하고는 찢어진 옷을 꿰메고, 싸리나무 밑을 팠다. 그러나 숨겨 두었던 보물은 모두 노란 황금물로 녹아 있었다. 할 수 없이 로스페데는 거기서 돋아난 싸리가지를 꺽어드리며, "왕자님 여기 지휘봉이 있으니 정신 차리고 나가 싸우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왕자는 용기를 얻어 싸리가지 지휘봉으로 처녀가 가지고 온 말을 타고 나가 싸워 크게 승리했다. 말을 타고 나간 왕은 크게 승리했고, 물론 로스페데는 왕후가 되었다. 아직도 싸리나무 속이 노란것은 황금물로 자란 까닭이며, 좋은 향내는 지성의 처녀 로스페데의 몸의 향수 냄새라고 한다.
▣ 사 랑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일곱 살 난 아들과 다섯 살 짜리 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빠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등산을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응급수술을 받던 중 피가 필요했는데, 아들과 같은 혈액형은 딸뿐이었습니다. 다급한 아빠가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오빠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딸아이는 이 질문에 잠시 동안 무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의사가 대성공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까지 딸아이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네 덕분에 오빠가 살게 되었어!" 아빠의 말을 들은 딸이 낮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와! 정말 기뻐요. 그런데... 나는 언제 죽게 되나요?"
아버지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죽다니. 네가 왜 죽는단 말이냐?"
"피를 뽑으면 곧 죽게 되는 게 아닌가요?" 잠시 숙연한 침묵이 흐른 뒤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넌 죽을 줄 알면서 오빠에게 피를 주었단 말이냐?"
"예... 전 오빠를 사랑하거든요."
▣ 사랑의 힘
광복 직전 스물두 살의 청년이 폐병에 걸렸는데 석달 정도 살 것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산기슭의 격리된 오두막집에서 혼자 외롭게 요양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매일 음식을 갖고 오셨다. 청년은 허무감과 절망감 속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당시 청년은 40㎞가 넘는 ‘결핵환자 보호소’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미모의 간호사가 환자의 어머니로부터 모든 사정을 전해 듣고 자신이 보증을 서서 무료 치료를 받게 해주었다. 간호사는 “병 고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까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환자는 병원까지 수십리 길이었지만 그 간호사를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새 힘이 불끈 솟구치곤 하였다. 간호사는 틈틈이 찾아와 “회복이 멀지 않다”고 격려해 주었다. 청년은 간호사에게서 사랑과 희망을 느꼈고 건강도 놀랍게 회복됐다. 이 청년이 바로 한국 교회 부흥에 크게 공헌한 고 최순직 목사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치유의 힘이 있다.
-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사랑 예화 모음
▣ 가시 면류관에 담긴 사랑
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눈썹 한 번 치켜 올리시면 가시 면류관을 엮는 군병의 손을 마비시킬 수 있으셨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놀랍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이 오셔서 행하신 사건 중에 가장 놀라운 부분일까? 별들로 구슬치기를 하시던 분이 자신의 무한성을 포기하신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성육신의 가장 멋있는 부분을 알고 싶은가?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친구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달아날 때도 그분이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다는 사실? 아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남녀 죄인들의 온갖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면서도 주님은 자기 변호를 거부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천국의 법정에 무수한 유죄 판결이 울려 퍼지고 빛의 창조자가 죄인들이 가득한 밤의 냉기 속에 버려졌을 때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무덤에서 사흘을 보내신 후 환한 웃음으로 부활의 아침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시며, 초라한 루시퍼에게 “그것이 제일 센 주먹이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심지어 그 부분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도 멋있다. 말할 수 없이 멋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맥스 루케이도
▣ 사랑의 치유력
사랑에는 능력과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치유력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건강해집니다.
▣ 아파하는 사랑
자녀 셋을 잘 키운 한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심방을 온 목사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자녀 셋 중 누구를 가장 사랑했나요.” 그러자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막내가 병들었을 때,그때는 막내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둘째가 집을 떠나 방황했을 때,그때는 둘째를 가장 사랑했고요. 큰 아이가 학교성적과 이성문제로 괴로워할 때,그때는 큰아이를 가장 사랑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다. 자녀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것을 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끌어안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사자는 병든 새끼를 절벽에 던져버린다. 독수리는 상처 입은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부모는 항상 자녀와 고통을 함께 나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도 한 차원 높다. 인간이 죄악의 올무에 빠져 고통 당할 때 독생자를 보내 우리를 구원해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병든 자, 낙심한 자, 고통 당하는 자, 방황하는 자를 불러 사랑으로 치유해주신다.